샤랑, 하고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

……그 빛, 그 소리만은 일생 잊을 수 없으리라.
싸움을 알리는 방울 소리.
장식이라곤 없는 갑옷소리조차 아름답게 울려 퍼지게 한, 그녀의 모습을.


「――――묻겠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그 말은 선명하게.
영상이 마모되어 가는 대신, 지금도, 극명하게 새겨져 있다.

「소환에 따라 대령하였다.
 이제부터 나의 검은 그대와 함께 하며, 그대의 운명은 나와 함께 하리니.
 ――――이것으로, 계약이 완료되었다」

……그래, 계약은 완료되었다.
그녀가 그를 주인으로 선택했듯이,
그도 그녀의 도움이 되겠다고 맹세한 것이다.

달빛은 맑디맑게 어둠을 비추고
창고는 기사의 모습을 흉내 내듯이 예전의 조용함을 되찾는다.
지금도 떠올릴 때마다, 홀로 그 이름을 읇조린다.

――――――지금은 잊혀진 창광의 아래.
금모래와 같은 머리카락이, 달빛에 젖어 있었다.





Fate



작년 즈음.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문득 그리운 검극을 떠올렸다.
제대로 된 순서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은 아득하니 신기루가 되어, 그때의 마음가짐도 지금은 저 먼 옛날의 일.

옛날이야기를 해보지.
어떤 성배를 둘러싼, 단 15일간의,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그 땐 제가 죽을 뿐입니다. 시로우가 상처 입을 일은 아니었죠.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앞으로 그런 행동은 하지 않도록 하시길. 마스터인 당신이 저를 감쌀 필요는 없습니다. 또 그럴 이유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그런 인간이 있다고 한다면, 그 인물의 내면은 어딘가 빠져 있는 것이겠죠. 그 결함을 안은 채 나아간다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극뿐입니다」


「――――――당신이 싸우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걸로 됐습니다」


「아니야, 세이버. 시로는 서번트를 얕보고 있는 게 아냐. 그 부분을 오해하고 있으면 이야기가 제대로 진행되질 않으니까 말참견을 하겠는데」


「그러니까 무리라 해도 싸우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기려 들어. 그 결과가 자신의 죽음이라 해도 상관없어.
 왜냐하면 네 마음속에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보다 타인 쪽이 더 소중하니까야」


――――――바보였다.
나 혼자서는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
정말로 이 싸움을 끝내려 한다면, 처음부터 해야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남자가 말했다.
누구와도 싸우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게 할 것인가, 하고.
자신이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면 우선 무엇을 바로잡고 누구를 벌할까를 정해야만 한다고.


「아니――――――와라, 세이버어어어어어어어!!!」


몽롱한 의식 속에, 의미도 없이 손을 뻗었다.
도움을 바랐기 때문에 손을 뻗은 것이 아니다.

단지, 하늘이 멀구나, 하고.

마지막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뿐.


「……하아, 그 고집은 정말로 당신답군요」


「정말, 이제 와서 대답할 필요는 없을 텐데요.
 저는 당신의 검입니다. 저 이외 그 누구가 당신의 힘이 되겠나요, 시로우」


그녀와 그 검은, 일심동체였다.
왕을 선정하는 바위의 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은 검의 광채는, 그녀의 광채이기도 했으며――――――


그 영혼은 지금도 전장에 있을 테지.
여명의 순간.
보랏빛 하늘 아래,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그녀는 단지 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은 사람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는 인간을 지킬 수 없다.


「알겠니, 세이버? 데이트라는 건, 다시 말해서 남녀간의 밀회를 말하는 거야.
 시로는 놀러 간다는 소리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남자애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어필할 찬스라는 거지.」


……아아. 하지만, 그런 일도 있었다.

다행히 하늘은 높고 바람은 시원해서.

이 추억은, 지금도 푸르게 빛나는 채, 가슴 속에 살아있다.


「왕으로서의 맹세는 깰 수 없습니다. 제겐 왕으로서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책무가 있으니까요.
 아서 왕의 목적은 성배의 입수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진다 하여도, 전 아르토리아로 되돌아갈 일은 없겠지요.
 제 바람은 처음부터 단 하나. ――――검을 손에 넣은 때부터, 이 맹세는 영원토록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시로우라면, 알아 줄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벌써 몇 년이나 옛날이 된 광경.


「그걸 손에 쥐기 전에, 확실하게 생각하는 편이 좋을 거다」

「――――아니오」

자신의 미래를 보여준다 해도, 온 힘을 다해 끄덕일 뿐.
괜찮겠니, 하고 마술사가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웃고 있었습니다.
 그건 분명 제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소녀는 단지 모두를 지키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지키고 싶다”라고 하는 감정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는, 왕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일은 불가능 했으니까.

그것을 알고도 검을 뽑았다.
그것을 알고도, 왕으로서 살아가리라 맹세했던 것이다.

그래서 몇 번을 사람들로부터 떨어지고, 분노를 받고, 배신을 당해도,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의 마음은 버렸다.
어렸던 그녀는 그것을 대가로, 사람들을 지킬 것을 바랬으니까.

그 고귀한 맹세를, 누가 알리오.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무엇이 있든간에, 설령, 그 앞에,

――――그렇다 해도,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피할 수 없는, 고독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나는 선정의 역할을 맡는다고 말했을 텐데. 어울리는 인간이 있다면, 기꺼이 성배를 양보하지.
 그것을 위해서――――――우선은 네 말을 듣고 싶은 거다, 에미야 시로」


그것은.
어딘가 본 적이 있는, 살아있는 채 보는 지옥이었다.

아무리 구원을 바란다고 해도, 그 손길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적어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게 끝내는 것.
‘살려지고 있는 시체’라고 하는 모순을 순리로 되돌리고
이 지옥을 만들어 낸 원인에게,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뿐.

신부는 이야기한다.
10년 전의 진상. 성배에 깃든 악의.
――――바로 그 구원이라곤 어디에도 없다고 하는 현실을.


슬픈 사건. 비참한 죽음. 지나쳐 사라져 버린 불행.
그것을 원래대로 되돌리는 일따윈 불가능.
정의의 사자라고 하는 것은, 일어난 사건을 효율 좋게 정리할 뿐인 존재다.


직시할 수 없었다.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자신에겐 그들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
이렇게 목소리를 듣는 것뿐, 그것을 들어 이루어 줄 기적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정의의 사자 따윈 그런 거라고, 내뱉었던 남자를 부정할 힘도 없다.

나에겐 명확한 적은 존재하지 않고.
나는, 스스로를 위한 바람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설령.
혹시 그들을 구원해 줄 “기적”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쓸 것인가――――――


「――――필요없어. 그딴 건 바라지 않아」

똑바로 시체그들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부정한다.


――――없어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그 모습이 이렇게나 가슴이 아프다.
그런 그에게 나는 무어라 말했던 것일까.
새로운 생활따윈 불가능하다, 라고.
자신에겐 왕으로서의 책무가 있다고, 고집스럽게 거부를 계속했다.


「아아――――――」

……아득한 옛날의 맹세를 떠올렸다.
가슴에 새겨진 단 하나의 말.
……싸우겠다고 결심했다.
모든 것을 잃고, 모두에게 미움받는다 하여도.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싸우겠다고 결심한 왕의 맹세.

「성배가 저를 더럽히는 것이라면 필요 없습니다. 제가 바랐던 것은, 이미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까요」

……그래,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기사로서의 긍지도, 왕으로서의 맹세도.
아르토리아라고 하는 소녀가 보았던, 단 한번 꾸었던 고귀한 꿈도.

「“약속된엑스――――――――”」
「세이버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당신에게 흔들림 없는 신뢰와 경애를.
왕으로서의 내가 아닌.
무엇도 지키지 못했던 소녀이지만, 마지막으로, 모든 영혼을 바쳐 당신의 검이 되겠습니다――――――


「"Läßt"――――――――!」

「"승리의 검칼리버"――――――――!」


아침 해가 오른다.
멈춰있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영원이라고도 느껴지는 황금의 빛.
그 안에서,

「마지막에, 단 하나 전할 것이 있습니다」

강하게, 의지를 담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아아. 어떤 말?」

온 힘을 다해 허세를 지으며, 평소처럼 되물었다.

되돌아보는 그녀.
그녀는 올곧은 눈동자로, 후회 없는 목소리로,

「시로우――――――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말하였다.

바람이 분다.
아침 해가 눈이 부셔 눈을 살며시 감고, 떴다.


「――――――――」

놀라지는 않았다.
그럴 것 같았던 것이다.
이별은,
사라질 때는, 분명 이렇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오직 멀리 뻗은 황야뿐.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기사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나타났던 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깨끗하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아아――――――정말로, 너다워」

읇조리는 목소리에 후회의 빛은 없었다.
잃은 것, 남겨진 것을 가슴에 품고, 단지 떠오르는 빛에 눈을 가늘게 뜰 뿐.

……잊지 않도록, 부디 오래토록 색체를 잃지 않도록, 강하게 바라며 지평선을 계속해 바라보았다.

――――――저 아득한, 아침노을의 대지는
그녀가 달려 나갔던, 황금빛 초원을 닮아 있었다.




[Realta Nua]




그건 누구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도 아니다.
저 하늘의 별에게 속삭일 듯한, 보잘것없는 소원의 이야기.


긴 여행이었다.
걸렸던 시간도, 달려왔던 이상도, 이루려 했던 인생도, 그 무엇도 귀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길을 걸어도, 목표와의 거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쉬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눈매를 강하게 뜨며.

머언 길을, 걸었다.

그의 여행은 언제까지고 끝이 없었다.
이유는 정말로 단순했다.
어디로 가야만, 무엇을 해야만 마음 놓고 쉴 수 있을까.
그런 맨 처음으로 정해두어야만 할 여행의 끝을, 아무리 해도 찾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영원토록 불변치 않은 것은 없다.

아무리 융성함을 자랑했던 명기라 하여도, 쓰면 쓸수록 노쇠해 간다.
그것은 기계도 육체도 정신까지도 마찬가지.
모든 것은 마모해 간다.
무언가를 볼 때마다 빛을 바래 간다.
고로, 어떤 일을 괴롭다고 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마음도, 몇 녗 동안의 되풀이 끝에 깨달았던 것이겠지.

네 행위엔 의미가 있어도.
너 자체는, 마지막까지 무가치하다고.


희망과 실망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로 나타난다.
고귀한 이상은 썩어빠진 의무가 되고, 결국은 때 묻은 집착으로 변한다.
어릴 적 동경했던 것들은 흔해 빠진 현실이 되고, 그것을 되풀이 하는 일은 있어도, 다시금 동경하는 일은 없어져 간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올바른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그는 올바르지 않았기 때문에.
괴롭다고 느끼는 마음 그 자체도, 소중하게, 소중하게, 열쇠를 걸어 숨겨두었던 것이다.


강철의 마음은 역시 강철이라는 증거.
이거라면 긴 여행도 계속할 수 있다.
대신 즐거움도 희박해지겠지만, 다행히 그는 욕심쟁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끔씩 뒤돌아 볼 수만 있으면 행복했다.

아름다운 것을 동경했다.
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보며 돌아다녔다.
아름다운 것은 어디에나 있었다.
……단지, 그 날에 헤어진, 별의 반짝임과는 만날 수 없었다.
분명 그의 여행이 끝나지 않았던 것은,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찾고 싶어 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영원한 꿈이었다.
걸려진 저주도, 바쳐온 이상도, 남겨두고 온 결말도, 너무나도 무거운 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잠들기 계속해도, 잠에서 깨어날 때는 결코 오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거부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깊게 호흡을 억누르고.

영원한 꿈에, 잠들어 있었다.

왕의 책무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 예언을 다하기 위해, 왕은 죽어서도 검을 쥔 이전으론 되돌아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라가 번영하고, 사람들이 바뀌어 가도.
이제 아무도 고귀한 왕 따윈 바라지 않는다 하여도, 그 맹세는 계속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는 것을 대가로 하여 많은 목숨을 맡아왔었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이렇게 가끔씩 꾸는 꿈이 슬펐다.
잠의 수렁에서 엿본 광경.
지금은 이미 아득한 그의, 고독한 여정에, 하다못해 자신의 마음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다.
인간다움을 가슴속에 접어두고,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인 기계가 되어도.
그 고통을, 설령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해도.

――――――내가 여기에서, 당신의 강함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영원히 지켜야할 약속이 있었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영원이리라.
그 옛날의 맹세와 각오가, 왕을 영원토록 이어간다.
검이 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나고 싶었다.
앞으로 영원히 계속해 잠들게 된다고 하여도.
이 목소리를, 그의 귀에 들려주고 싶었다.

「그건 어려운데. 애초에 그대들의 시간은 절망적일 정도로 엇갈려 있으니까」

마술사가 말한다.
그 바람은 너무나도 무리한 것이라고.

「평범하게 한다면 절대 만날 수 없지. 실현하기 위해선, 그 뭐라 말해야 할지, 2개의 기적이 필요한데.
 한 쪽은 계속해서 기다리고, 한 쪽은 계속해서 뒤쫓는다.
그것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면서, 지독히도 오랜 시간을 버텨오지 않으면 안 되지. 그건 말하긴 힘들지만, 바래서는 안 되는 꿈만 같은 이야기잖나?」

마술사가 묻는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왕의 책무따윈 상관없이, 단순히 이룰 것인가 아닌가, 바랄 것인가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아아, 착각하진 말도록. 왕의 책무를 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냐. 애초에 그대는 뼛속까지 임금님이지. 그런 그대에게서 긍지를 빼앗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잖나.
 그대는 그대로도 괜찮아.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당한 대가의 이야기야. 어린 계집 하나가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 그 정도의 대가를 받을 만큼은 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만」

마술사가 이야기한다.
검을 손에 쥔 때와 똑같이.
그 때는, 이제부터 닥쳐올 고난을 비웃었다.
지금은 이룰지도 모르는 미래를 향해 미소짓고 있다.

그 대답에 의미는 없으리.
이것은 검을 쥐기 전의 소녀가, 바랄 것인가 바라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뿐일 이야기.
어느 쪽을 선택한다 하여도 그녀에게 그것을 이룰 힘은 없다.
그렇다면.
별에게 소원을 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게 정말로 좋은 일일지는 또 별개의 일이지.
 아르토리아. 시대도 사람도 변했어. 그때와 다름없는 건 그대 뿐이야.
 꿈은 꿈인 채로가 아름답지. 그대는 그대로,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편이 편할 거야.
 그래도――――」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으리라.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바람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것만으로도 좋았던 것이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결국하여 누구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의 환상에서 왕의 모습이 사라질 그 날까지.

그 따스한 바람을 양식으로 삼아, 그녀는 미래영겁 이 꿈을 견뎌내 왔으니까.


결국.
그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했고.
그녀가 구원받는 일도 결국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에게 있어도, 그녀에게 있어도, 기나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걸어왔던 것일까.
황폐해진 대지만을 골라 걸어왔는데도, 깊은 숲을 빠져나와, 그리운 초원에 서 있었다.

그곳은 어디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그때부터 얼마만큼의 세월이 흘렀는지.
또한 그때부터 얼마만큼의 여정이 있었는지.

지금은, 모두가 애매했다.

「――――――――――」

어깨에서 짐을 내려놓고, 긴장해 딱딱해진 몸을 쉬게 한다.
……아아.
이 걸음은,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여행은, 여기서 끝난 모양이다.

눈앞은 너무나 맑고 넓었다.
그만큼 무겁게 손발을 옭매었던 족쇄는, 풀을 흔드는 바람에 의해 풀려간다.

마음은 따스하게, 한 걸음씩 그 시절로 되돌아 간다.

「――――――――――」

끝없는 푸른 하늘을 보며, 말로는 하지 않았던 언젠가의 약속을 떠올린다.
그것은 어렸기 때문에 꿈꾸었던 환상, 억지와도 같은 바람이었다.
같은 하늘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꼈으니까.
계속해 뒤쫓는다면, 분명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런 것을, 고향의 거리에서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꿈도, 깨어남을 맞이했다.

「――――――――――」

하늘을 올려다 본 채, 소망을 계속해 품에 안고.
바람의 방향이 바뀐 것을 깨닫고, 무심코 흘러내리려 하는 눈물을 참았다.
그녀는 기도하듯이, 찾아올 자를 계속해 기다린다.
……단지, 안녕, 하고.
지금까지 바랄 뿐이었던, 자그마한 소망에게 인사를 하며.



숨이 가볍게 차오르고 있었다.
믿을 수 없군. 호흡이 가빠지다니 몇 년 만일까.
마치 애송이였던 그 시절로 되돌아 간 것같다.
아니, 하지만――――경험을 쌓아왔다고 해서 제대로 된 인간이 되지도 못했지, 하고 그는 홀로 웃고 만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하늘을 향해 빌었던 것일까.

만나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이룰 수 있다면 다시한번, 그 존재를 품에 안고, 애태우고 있던 그를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의 고동이 빨라져 간다.
그래도 여기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면 계속해 걸어왔던 그의 역할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은 참을 수 없었으니까.
진심은 곧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여기선 그때와 똑같이, 그의 말을 기다리도록 하자――――――




하지만, 조그마한 불안감도 있었다.
이 바람, 이 기적은, 정말로 일어나도 괜찮은 것인 건가 하고.
그는 그 시절의 그가 아니다. 몸도 마음도 그녀가 우려했던 것처럼 마모되고 말았다.
이 풍경 역시 항상 떠올리고 있던 것은 아니다.
집착이 아니라, 단지 망각하지 않았을 뿐.
나날이 희미해져 가는 과거기억를, 계속 품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대로.
혹시 꿈인 채로 끝난다 해도, 그에게는 예상대로의 절망과, 정말로 자그마한 희망이 있으니까――――――


――――아니.
이제, 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건 끝이다.
말로써밖에 기억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소중하게 갈무리했던 것이,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다.

「――――――――――, 아아」

강철의 심장에, 그리운 피가 흐른다.
황금빛의 대지.
잃어버린지 오래된 그녀의 고향에, 겨우 마음이 따라잡았다.

솟아오르는 마음은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그래도 목으로 올라오는 말은 단 하나 뿐.
얼마나 만나고 싶었는지, 얼마나 기다리게 했는가는, 이미 의미가 없는 말이다.

그래.
결국, 그는 그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했다.
똑같이, 그녀가 구원받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지켜왔던 끝에 만났던 것이 있었다.
살아왔던 끝에, 고귀한 것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소중한 마음이 밖으로 드러난다.
깊은 곳에 숨겨두길 잘했다.
그 미소는, 본래 그랬듯이, 소년과도 같이 우직하게,


「다녀왔어, 세이버」


……입으로 나온 말은, 정말로 그때와 똑같이.
마치, 지금부터 그 날의 계속됨이 시작하는 것처럼.

「――――――――――」

땅에 내딛은 발은 가볍게.
소녀는 허물어지는 듯이 미소지으며,


「예――――――어서 오세요, 시로우」


꿈은, 이렇게 끝을 알렸다.





……별을 쫓고, 별을 맴돌아.
앞장서 나가고, 다시 계속해 배웅하여.
많은 것들을 잃고,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 간다.
그 끝에 있는 것은, 이제껏 먹어치운 거대한 시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그맣고 자그마한 하나의 조각.

――――어찌 이리도 눈부시단 말인가.
조그마한 손바닥에 남겨진, 넘칠 듯 품에 들어온, 눈이 타버릴 듯한 반짝임을 보았다.

그렇게.
오랜 여정의 끝에, 그들은 만났다.
별을 동경하고 있던 그의 여행은 그것으로 끝나고.
이제부터는 또 다른, 길고 긴, 그와 그녀의 이야기가 계속되어 간다.

그 끝에.
그도 또한 누군가에게 별이 되도록, 이 세상은 계속해 돌아간다.


이야기꾼이 침묵하고, 연주가 중간에 그쳐도,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이 희극이라 하더라도, 비극이라 하더라도, 갈채가 끊이지 않는 한,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무수한 인생처럼.
구원받지 못했던 우리들과, 아직 그 도중에 있는 우리들에게, 따뜻한 축복을.

――――――우리들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Fate Hollow Ataraxia - 마지막 싸움

Posted 2007. 1. 23.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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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서번트는 마스터를 따라야 하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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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뜻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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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도우 사를 부수게 놔둘순 없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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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의 집만큼은 지켜내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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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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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모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수밖에 없겟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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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덤벼라 잡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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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상대해 드리겟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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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담배한대가 어울릴거 같아..]
 
 



이싸움에서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몸을 전율 시키더군요.
 
 

AIR The Animation - The 1000th Summer

Posted 2007. 1. 1. 02:24

Fate Hollow Ataraxia - 하늘의 역월

Posted 2007. 1. 1. 02:01


Fate Hollow Ataraxia -  하늘의 역월






http://memolog.blog.naver.com/lsm987/166





엘프가 숲을 걸으면...
"왜 길로 다니지 않는 거지?"
이루릴의 모습이 사라지고 내가 한 말이다. 카알은 대답했다.
"길은 인간의 것이야. 엘프는 길을 만들지 않아."
"길을 안만든다고요?"
카알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런 옛이야기가 있지. 엘프가 숲을 걸으면 그는 나무가 된다. 인간이 숲을 걸으면 오솔길이 생긴다.
엘프가 별을 바라보면 그는 별빛이 된다. 인간이 별을 바라보면 별자리가 만들어진다.

엘프와 인간의 변화를 잘 나타내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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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수가 아니다."
드래곤 로드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나는 질겁했다. 그렇군. 그는 알고있었군. 드래곤 로드는 차갑게 말했다.
"그 간악한 녀석의 말이로군."
드래곤 로드의 목소리의 울림은 스산했다. 난 간신히 입을 열었다.
"예.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에요. 당신이 아까부터 우리 일행에게 던져온 질문, 아마 당신은 우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셔서 그렇겠지요. 무례하다고 꾸짖지 않으시겠다면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는 하나가 아니에요. 따라서 당신은 아까부터 얼빠진, 죄송하지만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돼요.

예. 얼빠진 질문을 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가슴이 쾅쾅거리는걸? 다행히도 드래곤 로드는 초장이의 맛이 어떨지 심사숙고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차분히 말했다.
"나의 실수를 설명해주겠나?"
"당신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눠 놓고는 선택하라고 질문하셨어요."
"나눌 수 없는 것?"
제레인트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고 네리아는 두손을 곽 쥔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샌슨은 파랗게 질려있었고 이루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카알은 희미하게 웃고있었다.
"그래요. 당신은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누어서 질문하셨어요. 당신 보시기에는 나눌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드래곤 로드께서는 샌슨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지요."
샌슨은 덜커덩하는 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그 외에는 심장이 내려앉은사람의 모든 징후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주고는 계속 말했다. 손바닥에 땀이 나는걸? 난 슬쩍 그것을 바지에 닦아 버리고 싶었지만 꾹 참으면서 말했다.
"샌슨의 가족들을 죽이겠는가, 샌슨을 죽이겠는가. 조금 달랐을지 몰라도 대충 그런 의미였지요. 하지만 그건 나눌 수 없어요."
"어째서지?"
"샌슨은 하나가 아니니까. 샌슨은 헬턴트의 경비대장 샌슨이고, 나의 좋은 동료 샌슨이고, 샌슨의 아버지 조이스씨의 사랑하는 장남이에요. 카알의 신뢰받는 길앞잡이고, 그리고 그 아가씨에게는 사랑하는 연인인 샌슨이에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샌슨이지요. 이런 식의 이야기도 들어 보셨겠지요? 어쨌든 당신은 샌슨 하나를 살려주는 대신 그 가족들을 죽이겠다고 말했지만, 그 가족들을 죽이면 샌슨도 죽는 셈이에요."
난 주먹을 꽉 쥔 채 말했다. 이마에 열기가 올라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말을 멈출 수가 없다.
"그래요. 그 모든 것이 샌슨이에요. 당신이 헬턴트 영지를 파괴하면 헬턴트 경비대장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날 죽인다면 후치의 동료 샌슨을 죽이는 셈이고요. 당신이 조이스씨 를 죽인다면 조이스씨의 아들인 샌슨은 죽는 셈이에요. 당신이 카알을 죽인다면 카알의 길앞잡이 샌슨이 죽지요, 그리고, 그리고 그 아가씨를 죽인다면 그 아가씨의 연인인 샌슨을 죽이는 셈이라고요."
"샌슨은 하나가 아닌가?"
난 기가 막혀서 고함을 빽 질러버렸다.
"하나가 아니에요!"
그리곤 곧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계속 다물 수가 없었다.
"영원의 숲, 영원의 숲 아시죠? 거기서는 자신이 자신을 죽이게 되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지요?"
드래곤 로드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건 안다만, 그것이 이 이야기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 말해주겠나?"
"나가면 그 사람은 사라져버려요! 나라는 존재가 아무리 남아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잊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아직까지 그걸 모르세요? 나라는 것은, 나 라는 것은 이 몸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구요. 다른 사람들에게, 다른 모든 것들에 다 내가 있어요. 그것이라고요!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내가 있는 거라구요. 우리는 그렇게 살아요.
그것이 인간이에요!"
말을 마치고나자 숨이 찼다. 너무 흥분해 버렸나봐. 난 목을 타고 흘러 내리는 땀을 닦아 내었다. 지금 누군가 나에게 차가운 냉수 한 잔만 준다면 그를 위해 노래 100곡을 바치겠어.

농담이 아니라고.
드래곤 로드는 침울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그랬었군… 그럴 거라고 짐작했지. 이제야 확신을 얻게 되었군."
드래곤 로드는 뭔지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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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지만 뒤를 생각한다.
"하하. 그러니? 음. 앞을 보면서도 뒤에 따라오지도 않는 추적자를, 혹은 자신의 과거,

어제의 실수 따위를 생각하면서 진구렁탕에 발을 빠트리는 사람이 있다면 넌 그 사람을 뭐라고 부를 거지?"
"바보…지?"
"그래. 바보는 마치 곰곰히 생각하기만 하면 지나간 실수가 바로잡아질 것처럼 믿지. 과거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 완전히 고정된 것인데 말이야."
"그럼 범부는?"
"범부도 어떤 의미에선 바보와 마찬가지야. 다른 점이 있다면 지나간 실수를 생각해서 앞으로는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 범부, 보통사람일 뿐 이지. 하지만 범부라고 해봐야 결국은 그 사람도 과거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야. 바보든 범부든 과거라는 시간의 산물이지. 바보는 그것에 매달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것에서 배운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제레인트와 아프나이델의 저 감춰진 시선을 느끼는 것은 퍽 유쾌한 일인걸? 두 사람은 모두 안듣는 척하면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두 사람 모두 능숙한 거짓말쟁이나 사깃꾼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 자신의 행동을 잘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키키키키. 레니는 한참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가 그 풀려버린 표정 그대로 말했다.
"그럼… 현자는?"
"현자는 과거의 시간과 상관없는 존재가 현자야. 그는 현명하므로 과거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미래를 깨달을 수 있지. 사실 이런 사람은 드물지. 핸드레이크나 그렇게 불릴 수 있을까?
어쨌든 그런 사람들은 역사책을 읽지 않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왜냐하면… 그들은 사물의 보이지 않는 이면을 생각하니까. 여기서는 사실 '앞' 이라는 말과 '뒤' 라는말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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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인간이라구요?
"바로 그것이다. 너의 국왕이 전쟁을 걸었을 뿐이야. 그런데도 너에게 전쟁의 댓가를 치르게 하려 든다면, 넌 뭐라고 하겠냐?"
"장기판의 말 신세인 아랫사람만 죽어난다는 식의 이야기로군요."
"억울하지 않느냐?"
"전혀."
"…이유를 말해봐라."
모닥불을 다시 헤집었다. 잠시 불티가 밤하늘을 향해 비산해갔다. 나는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윗사람이 아니라서 억울하다는 그런 식의 논리대로 따진다면, 난 내가 독수리처럼 날 수 없어서 억울할 수도 있어요. 내가 물고기처럼 물 속에서 숨쉴 수 없어서 억울할 수도 있지요."
운차이는 어처구니 없는 얼굴이 되었다.
"넌 독수리나 물고기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리고 너의 국왕, 귀족, 장군들도 너와 같은 인간이다. 같은 인간이면서 왜 아래에 있는 사람들만이 댓가를 뒤집어 써야 되느냐. 나도 인간이고, 날 바이서스로 파견한 내 상관도 같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난 명령 때문에 여기로 왔고 결국 죽게 되었지만, 내 상관은 또다른 첩을 육성시키며 지금도 배불리 잘살고 있을 것이다.
나보다 그 놈이 더 나쁜 놈 아니냐?"
"같은 인간? 허, 웃기는군요."
내 대답에 운차이는 놀란 모양이다. 그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뭐?"
"바보나 그런 말을 해요. 같은 인간이면서 어쩌니 저쩌니. 헤, 같은 인간이 세상 에 어디 있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자신과 비슷한 범주에 넣고 이해하는 것 은 다시 없는 바보죠."
운차이는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건 카알의 말씀이시지. 난 내 눈 가득히 검은 밤하늘을 담으며 이야기했다.
"당신처럼 생각하면 귀족이나 왕족을 욕하기에는 쉽겠죠. '제기럴, 같은 인간인데 왜 난 보리빵에 물 한 그릇으로 아침 떼우는데 녀석들은 미녀들의 시중을 받아가며 산해진미를 먹느냐.' 그게 억울하면 나라를 세우고 왕이 되어버려요. 그게 귀찮아서 하지 않겠다면 입 다물고 앉아 있어요."
"귀찮아서…라고?"
"귀찮은 것 아니예요? 당신 말마따나 같은 인간이면, 당신도 자이펀의 왕(거기서도 왕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처럼 왕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능력을 가졌으면서도 하지않는 것은 귀찮아서 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게 귀찮아서 하지 않는거냐? 불가능하지…"
"얼씨구. 이젠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무시하시는군요. 당신 같은 화법은 추해요. 불평할 때는 같은 인간이고, 당신을 그런 사람들에게 비교해서 꾸짖을 때는 다른 인간인가요? 누구나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비판하면 기분나쁜 법이죠. 동일성을 가져요. 그렇게 같은 인간이라면, 이 넓은 대지 어느 한 편에 나라를 세워요. 이제 너는 왜 그러지 않겠냐고 묻겠지요?"
운차이는 매서운 어조로 질문했다.
"묻고 싶군."
"난 귀찮아요. 난 헬턴트 영지의 초장이 후보로 남는게 훨씬 속편해요. 내가 야심이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간혹 나도 귀족들이 되고 싶기는해요. 하지만, 난 그렇게 되지 않겠어요."
밤공기가 차갑다.
"하지만 누군가가 야심 없고 능력 없는 자의 자기 위안이라고 날 욕하게 하진 않겠어요. '쳇, 넌 야심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안되니까 비굴하게 자기를 합리화 시키는 것 아니냐?' 바보 아네요? 그런 사람들은 야심이 사람의 본능인 것처럼 생각하죠. 자기가 그 야심 때문에 목숨까지 걸며 허겁지겁 돌아다니니까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알아요. 그런 작자들은 남을 이해할 줄 몰라요. 뭐, 보통은 그런 자들이 왕이 되고, 영웅이 되고 하겠지만,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지요? 만일 그런 영웅이 무능력하고 비굴하다고 날 비판하겠다면, 난 그 작자에게 초를 만들어보라고 하겠어요. 그리고는 '초 한 자루도 못만드는 주제에. 시장 한편에 집어던지면 굶어죽기 십상이겠군.' 이라고 말해주지요. 그러면 그 작자는 화내겠지요? 하지만 그런 영웅들은 자기 손으로 먹고 살 재주는 없을걸요? 다만 무한한 야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부려서 왕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을 뿐이죠. 그리고 난 그런 야심이 없는 대신, 내 손재주로 내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고."
운차이는 날카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말 되지도 않는 말재주로 장황하게 말하자니 머리가 아프다. 결론을 어떻게 내려야 되나?
에라. 좀 거칠더라도 그냥 끝내자. 머리가 아프다.
"그게 진정한 '같은 인간'이지요. 내가 남이 될 수 없고, 남이 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부터 같은 인간이라는 것이 성립될 수 있어요. 당신은 당신을 이곳으로 파견한 상관이 될 수 없어요. 당신의 가족, 당신의 추억, 당신의 사랑, 당신의 과거의 소중한 것을 모두 팽개치고 그 상관의 자리에 대신 들어 가라면, 그렇게 할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당신 상관의 아내를 부인이라 부르고, 당신 상관의 자식들을 내 아들아, 혹은 딸아, 이렇게 부를 수 있어요?"
"…내 상관은 독신이다."
난 웃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운차이도 피식 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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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어도 받아주지 않을 때의 슬픔
"뱀파이어와 친구가 되기 쉬울까요?"
이루릴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것이었군요…."
"예?"
내 얼빠진 대답에 이루릴은 그저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은 친구와 적을 나누는 선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죠. 그러나 처음보는 상대에게는 먼저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민다고 했지요. 난 그 말에 퍽 감동했어요."
감동…했다고?
"당신은 헬카네스의 율법에 따라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살기 위해 분명한 선은 가지고 있지만, 유피넬의 뜻에 따라 먼저 손을 내밀어요. 그것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유피넬과 헬카네스 양자를 모두 따르는 인간이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의 세계는 모두 조화로와서 특별히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밀 줄 몰랐죠."
그런가? 난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이루릴의 말을 들었다.
"아마 우리가 드워프들과 사이가 나쁜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우리는 왜 드워프와 관계가 나쁜지 몰랐죠. 하지만 난 알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을 보고 알았죠. 우리는 친구가 되기 위해 손을 내밀 줄 몰라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방식을 몰라요. 그것이 드워프들에겐 기분 나쁘게 보였던 것 이예요."
이루릴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눈이다.
"그래서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었죠.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을 배우고 싶었어요. 처음 보는 이 영지의 환자들을 돌보았어요. 그것이 기쁨일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루릴이 이 영지의 사람들을 성심껏 도왔던 이유는 그것인가? 인간의 슬픔이나 고통을 엘프가 공유할 까닭은 없다. 그러나 이루릴은 내 말에 감동하여 친구가 되기 위해서 먼저 손을 내밀어보았던 것인 모양이다. 인간이었다면, 지금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인간이었다면 몹시 부끄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순진한 눈으로 아무런 의혹이나 은유없이 평범하게 말하고 있는 엘프다. 그래서 나도 완전히 긴장을 풀고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기쁘지 않았어요?"
이루릴은 미소를 지었다.
"기뻤어요. 그들의 감사하는 표정을 보는 것이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손을 내밀게 됨으로써 예전엔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게 뭐지요?"
"손을 내밀어도 받아주지 않을 때의 슬픔.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어서 뱀파이어에겐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군요. 난 그것을 배웠어요. 고마워요, 후치. 당신처럼 익숙하게 손을 내밀 줄 알게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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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바라보는 자에겐...
"드래곤 로드는 태양이지."
우리는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카알의 말은 조용히 이어졌다.
"그는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고, 그리고 그의 빛은 무서울 정도로 세계를 비추지. 그는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권능을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는 바라볼 수 없는 존재이며, 그 빛 을 강요하는 존재야. 그는 자신의 빛 때문에 오히려 다른 어둠을 바라보지 못하지. 그는 너무나 위대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말했다.
"루트에리노 대왕은?"
카알은 여전히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달이지."
"달이오?"
"우리가 어둠을 걸어갈 때 달은우리를 비추지. 그의 빛은 똑바로 바라볼 수도 있고, 바라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 그는 만물을 다스릴 정도로 위대하진 않을지 몰라도, 어둠 속을 걸어가고 하는 사람들에게 조력이 되고 희망이 되는 존재였지."
"…우리는요?"
네리아의 약간 가냘픈 목소리였다. 카알은 빙그레 웃었다.
"우리 말이오?"
"예. 우리, 뭐, 예. 우리요."
"우리는 별이오."
"별?"
"무수히 많고 그래서 어쩌면 보잘 것 없어 보일 수도 있지. 바라보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도 있소. 영원의 숲에서처럼 우리들은 서로를, 자신을 돌보지 않는 한 언제라도 그 빛을 잊어버리고 존재를 상실할 수도 있는 별들이지."
숲은 거대한 암흑으로 변했고 그 위의 밤하늘은 온통 빛무리들 뿐이었다. 카알의 말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줄 아오. 밤하늘은 어둡고, 주위는 차가운 암흑뿐이지만, 별은 바라보는 자에겐 반드시 빛을 주지요.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 존재하는 별빛 같은 존재들이지. 하지만 우리의 빛은 약하지 않소.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빛을 뿜어내지."
"나 같은 싸구려 도둑도요?"
네리아의 목소리는 슬프지 않았다. 그리고 카알의 대답도 평온했다.
"이제는 아시겠지? 네리아양. 당신들 주위에 우리가 있고, 우리는 당신을 바라본다오. 그리고 당신은 우리들에게 당신의 빛을 뿜어내고 있소. 우리는 서로에게 잊혀질 수 없는 존재들이오. 최소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이상은."
어둠 속에서 네리아의 눈이 별처럼 아름답게 반짝였다. 나는 혹시 반짝인 것은 그녀의 눈물이 아닐까 따위의 생각은 관두기로 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바라보자, 별들은 나에게 빛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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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과 상사병은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짝사랑과 상사병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지요. 참 글러먹은 문제입니다. 짝사랑 을 하면 그냥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면 될 문제인데 말입니다.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꼭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된단 말입니다. 상대도 날 봐주었으면, 날 생각해주었으면, 날 사랑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고장이 나버리지요. 고약하다면 고약한 것이고, 동정하려고 들면 정말 동정받을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도, 도대체 무슨 말을…"
제레인트는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조금 꺾더니 다레니안을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당신도 그 점에선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뭐라고?"
"사랑은 어쩌면 모든 종족에 있어서 마찬가지의 불길일지도 모르겠군요. 당신은 그가 변화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맞습니까?"
"변화…?"
"만물을 사랑하는 핸드레이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사는 핸드레이크가 되기를 바랬을 겁니다. 당신은 세계를 사랑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을겁니다. 사실 누가 그런 자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당신은 제멋대로 그가 변화하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그의 모습으로서 있게 허락하지 않고, 그를 파괴해서 재조립하려고 했을 겁니다. 맞습니까?"
다레니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창백한 얼굴로 제레인트를 마주볼 뿐이었다. 제레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은 그의 모습에 맞추어 당신의 사랑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에 맞추어 그를 변화시키려고 했습니다. 적어도, 내가 들은 바로는 그렇습니다."
다레니안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럼, 그럼 네가 말하고 싶은, 진정한, 진정한 사랑은 뭐지?"
"상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다는 거지? 상대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면, 그건 무관심하고 뭐가 다르단 말이야!"
다레니안의 작은 몸 전체가 분노로 떨고 있었다. 하지만 제레인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두 가지는 구별하기 어렵겠지요. 나로선 확신은 없습니다. 신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에게 무관심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겠지요. 그래서 나는 핸드레이크가 당신에게 무관심했는지, 아니면 자신을 마구 변화시키려드는 당신의 모습마저도 포용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제레인트는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핸드레이크는 드래곤 로드마저도 북방으로 쫓아버릴 정도의 남자였습니다. 그건 잘 아실 테지요. 직접 보셨으니까. 그런 자가 왜 시시콜콜 자신을 방해하는 당신은 그대로 내 버려두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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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난.. 내가.."
제레인트는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날 내려다 보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다레니안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채 날 올려다 보았다.
난 요정의 나라에 무릎을 꿇은 채 300년 전에 다른 사람이 꺼내려다가 끝끝내 꺼내지 못했던 말을, 그러나..
반드시 했어야 될 말을, 조용한 확신을 담아 말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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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이루릴...
고아한 성품을 가진 이루릴은 당연한 것을 질문하는 바보를 바라보는 식으로 나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다.
"후치와 함께 보낸 저의 시간은 후치의 말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예?"
"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당신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나요?"
"어, 저, 아니죠.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당신 속에 있나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예."
"그럼, 당신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 당신과 함께 하면서 보아온 당신의 모습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이 필요할까요. 묻겠어요, 후치. 자신의 행동을 자신에게 설명해야 됩니까?"
"…예. 우리는 그래요. 일생을 함께 보내온 부모의 말이라도 우리는 그 이유를 알아야 되죠. 자신의 말이나 행동도 마찬가지예요. 스스로에게 설명해야 됩니다."
"그런가요."
"우리는 불안하니까… 쓸데없는 질문을 했군요."
"아니오. 당신은 나에게 당신들에 대한 이해의 새로운 방식을 선물했어요.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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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향해 나는 드래곤
"동업자 선생!"
"뭐라고?"
"동업자 선생! 당신과 루트에리노 대왕은 인간이라는 초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불길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불길이니까 스스로마저도 태워버리는 초가 되겠지요. 우리가 이룩하는 번영은 목적 잃은 폭주가 되고 말 테죠!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르타트를 도피시키겠어요."
타이번은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도피라고?"
"예! 나는 그녀를 인간의 석양으로 도피시키겠어요. 그리고 그녀로 하여금 거기서 인간을 기다리게끔 할 생각이에요. 우리가 스스로를 바로잡아 새로운 종족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럴 가능성은 있지요. 그녀가 우리에게 베푼 선물이 있으니까.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까!"
나는 고개를 들어 아무르타트의 뒷모습을 쫓았다. 참을 수 없는 격정에 목이 메이지만, 나는 간신히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마법사에게 우리의 미래를 들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놓치고 석양을 향해 치달아간다면, 또다른 자신을 모두 잃고 죽음을 향해 치달은 넥슨처럼, 자신을 모두 나눠주고 죽어버린 길시언처럼, 주위의 모든것을 파괴시키며 자신만을 부여잡은 채 멸망을 향해 치달아간 할슈타일 후작처럼, 우리가 석양을 향해 치달아간다면,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때였다.
아무르타트의 비행에 따라 길게 찢어지던 구름들이 마침내 하늘 양편으로 모두 갈라졌다. 보랏빛 하늘의 모습은 어두웠으나 아무르타트의 비행을 쫓는 내 눈은 석양을 볼 수 있었다. 불길처럼 붉은 석양, 그리고 아무르타트의 검은 몸은 불덩어리처럼 타오르면서 태양의 뒤를 쫓았다.
갑자기 어깨가 시려왔다. 입에서 나오는 하얀 김이 그제서야 눈 앞을 어지럽혔다. 나는 바짝 굳어버린 제미니의 손을 잡아올려 입김을 불어주었다. 나는 제미니의 일렁이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면서 타이번에게 말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황혼에 서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우리를 기다려온 아무르타트의 모습을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그녀가 우리 헬턴트에 베푼 것과 같은 것을, 우리의 자손에게 베풀수 있을지도 모르지요.반대로 인간의 황혼과 함께 그녀도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것을 확인할 수는 없어요. 그러니 그녀를 보내고 믿을 수 밖에 없지요."
"그녀를… 그녀를 우리 자손들에게 선물한다는 말이냐?"
타이번은 이제서야 300 년의 피로를 한꺼번에 느끼는 것처럼 메마른 목소리로 힘들게 말했다.
"정답은 없지요.아까 말했듯이 나는 우리 자손을 위해 장애물을 치워 준 것일 수도 있고, 혹은 우리 자손을 징계할 교사를 미래로 파견한 것 일수도 있어요. 그것은 시간이 결정할 일이지요. 그러니…"
제미니는 내 눈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가슴에 얼굴을 박았다. 나는 그녀의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말했다.
"내 역할은 여기서 끝났어요. 첫눈을 그 만가로 삼아 떠나간 내 마법의 가을처럼 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죠."
나는 고개 돌려 타이번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 너머로, 석양을 향해 나는 드래곤을 보았다.